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통곡의 벽 (문단 편집) == 배경 == 본래 이 자리에는 [[솔로몬]] 왕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다. 기원전 957년에 솔로몬 왕이 세운 성전을 제1성전이라 부른다. 하지만 기원전 586년 [[신 바빌로니아]]가 침공하며 제1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 상당수를 바빌론으로 끌고갔다. 이것이 [[바빌론 유수]]이다. 이때 유대교에서는 최고의 성물이고 유대교 제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약궤]]가 사라졌다. 살아남은 제사장들이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옮겼다는 말도 있고 성전산 지하에 숨겼다는 말도 있지만, 아마도 바빌로니아의 군병들이 제1 성전의 보물과 귀금속을 약탈할 적에 같이 파괴했을 공산이 크다. 나무로 만든 궤짝에 금박을 입히고 금장식물을 달았다고 하므로, 보물을 찾는 병사들이 보면 절대로 그냥 내둘 리 없다. 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황제 [[키루스 2세]]는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관용정책의 일환으로 바빌론에 끌려온 유태인들을 이듬해(기원전 538)에 고향 땅으로 돌려보냈다. 이때 키루스 2세가 임명한 유대 지역의 총독은 즈루빠벨(혹은 스룹바벨)이었다. [[다리우스 1세]]가 지원하고 즈루빠벨이 주도하여 유대인들은 기원전 521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기원전 516년에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였다. 이 성전을 '제2성전' 혹은 '즈루빠벨 성전'이라고 한다. [[느헤미야]]가 성전을 재건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느헤미야는 성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였다. 그러나 [[언약궤]]를 찾을 길이 없어서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없었던 듯하다. 유대 지역을 지배한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가 제2성전에 다른 신상을 세우고 일부를 망가트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외세 왕조의 전횡에 분개하여 [[유다 마카베오]]의 주도로 [[마카베오 전쟁|혁명]]이 일어나 제2성전에서 이교의 신상을 제거하고 망가진 부분을 수리하였다. 이를 기념하는 절기가 '[[하누카]]'이다. 이후 로마의 지원으로 [[헤로데 대왕]]이 즉위하였다. 이두매아, 즉 [[에돔]] 출신으로 정통성이 부족했던 헤로데는 정통성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제2성전을 증축했다. 이를 일명 헤로데 성전이라고 한다. 헤로데 성전은 제2성전을 증축했을 뿐이므로 제3성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바위의 돔을 부수고 그 자리에 성전을 세운다는 내용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제3성전'이 개봉하기도 했다.]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지나치게 세금을 매기고, 유대교에 간섭하고, [[칼리굴라]]가 폭정을 휘두른 영향으로 서기 66년부터 73년까지 1차 유대전쟁이 벌어졌다. 73년 (훗날 로마의 황제가 된)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헤로데 성전을 깨끗하게 헐어버렸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건물을 헐어버렸지만, 성전의 축대이기도 했던 '이방인의 뜰' 부분의 서쪽 담장만큼은 헐어버리지 못하였다. 축대까지 무너트리기는 너무 힘들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옛 헤로데 성전 건물의 서쪽 축대 일부만은 무너지지 않고 남았으니, 이것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또한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축출하고 외국으로 흩어지게 하였으니, 이것이 [[디아스포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